2023년 7월, 일본 도쿄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勳)은 새하얀 자켓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한국 야구의 경기력 부진, 일본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 대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첫 대상자가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이었다.
일본프로야구(NPB) 통산 최다 안타(3085개) 기록자인 그는 은퇴 후에는 야구 평론을 하며 '독설가'로 활동했다. 또한 한국 국적을 유지하다 2024년 귀화한 그는 9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6세. 한국 언론과 마지막 인터뷰에서 나눈 얘기를 남긴다.
장훈 자서전에 실린 사진. 장훈 선수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IS 포토 80대 나이가 된 그는 이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야구계를 떠나 지인들과 어울리고, 가끔 공원에 나가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소일한다는 노신사(老紳士)는 젊은 시절보다 한결 온화해 보였다.
마흔한 살까지 프로야구 선수로, 팔순까지 평론가로 활동한 그는 이제 자연인으로서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장훈은 “어머니(박순분 씨)가 여든세 살에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동안 병수발을 했습니다. 그 뒤로는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이렇게 지내요”라며 허허 웃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가 됐고, 2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키며 장훈은 매일 전쟁을 벌이듯 치열하게, 지독하게 살았다. 그 삶의 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전쟁’에서 나왔다. 그에게 전쟁이 대해 물었다.
“난 야구 말고는 잘 몰라요. 그래서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게 있죠.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겁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세요. 누가 행복합니까? 싸워서 좋은 결과가 나온 적 있나요?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화합해야 해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4년 겨울 일본 히로시마. 겨우 네 살이었던 장훈은 또래들과 산에서 캐온 고구마를 모닥불에서 굽고 있었다. 식량 구하기 어려웠던 전쟁통에선 흔한 일이었다. 후진하던 트럭에 치여 장훈의 오른손이 모닥불에 빨려 들어갔다. 이때 눌어붙은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그가 숨을 거둘 때가지 그대로였다. 그 위로 모진 시간의 흔적인 주름이 내려앉았다. 습관 때문인지 장훈은 기자와 마주 앉은 내내 테이블 아래에 오른손을 뒀다.
2023년 인터뷰에서 원폭 피해로 굽은 오른손을 보여주는 장훈. IS 포토 이듬해 장훈의 고향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2남2녀 중 막내 장훈은 당시 열두 살이던 큰누이를 잃었다. 장훈은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하얗고 예쁜 누나가 화상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걸 목격했다. 그 이듬해에는 아버지(장상정 씨)가 한국에 잠시 건너갔다가 사고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해가며 삼남매를 키웠다. 전쟁이 남긴 가난과 고통은 전쟁만큼 힘겨웠다. 전쟁의 상흔을 품고 장훈은 일상을 전쟁처럼 살았다.
“어릴 때 판자촌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살았죠. 나는 말이에요. 어머니가 주무시는 걸 평생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늦게 주무시고, 가장 먼저 일어나셔서 일하셨으니까. 야구로 성공하기까지 제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어머님께 2층 집을 사드리는 거요.”
소년은 성공을 갈망했다. 히로시마 종합구장 담을 기어올라 엿본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꿈같은 무대였다. 가난한 한국 국적의 소년이 오직 실력만으로 해볼 만한 경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손가락 두 개가 붙어버린 오른손으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오른손잡이 장훈은 왼손타자가 되기로 했다.
“오른손으로는 공을 쥘 수 없었어요. 배트는 양손으로 잡을 수 있으니 괜찮았는데, 오른손에 힘이 실리지 않으니 우타자는 할 수 없었죠. 좌타자가 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야구를 시작하면서 3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연습하면 할수록 실력이 좋아지니까 너무 재밌더라고. 사실 지금까지도 왼손 타자로 성공한 제 자신이 믿기지 않아요.”
지독한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그가 나니와 상업고교에 다닐 때 ‘동쪽의 오, 서쪽의 하리모토’(東の王、西の張本)라는 말이 일본 야구계에서 유행했다. 오는 일본의 전설적인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王貞治), 하리모토는 장훈을 일컬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