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언 변호사 도박판에 앉는 사람은 자신의 돈만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함께 올라가는 것은 가족의 일상과 동료의 생계, 자신의 이름이다. 더 무서운 순간은 잃은 돈을 되찾으려 다시 도박해야 한다고 믿을 때다.
올해 9월 개그맨 이진호는 상습도박과 음주운전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양측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도박사이트에 송금한 돈은 8억7000여만원에 달했다.
인터넷 방송인 철구의 고백도 충격을 줬다. 그는 지난 7월 방송에서 필리핀 원정도박과 고금리 사채 이용 사실을 인정했다. 일주일에 10억원 이상을 도박에 썼다고 밝혔고, 출연자들에게 지급할 정산금이 밀린 배경에도 자신의 도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일이 함께 일한 사람들의 대가까지 위협하게 된 것이다. 지난 8월에는 철구에 대한 사기 고소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연예인의 도박에는 늘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돈도 많고 인기도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풍요가 마음의 안정은 아니다. 개별 당사자의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불안과 괴로움을 피하려 도박을 하는 행동은 도박장애에서 살피는 징후 중 하나다. 어제의 박수가 내일의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 삶을 단순히 ‘배부른 일탈’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방송 몇 번 하면 다시 벌 수 있다’고 여긴다면 높은 수입은 멈출 시점을 늦추는 핑계가 된다. 무대에서의 성공이 도박판의 우연까지 지배해주지는 않는다. 지인이 권하는 은밀한 자리도 경계해야 한다. 비밀이 보장된 공간과 안전한 공간은 다르다.
더 깊은 함정은 ‘본전만 찾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이다. 손실을 만회하려 도박을 반복하는 것은 대표적인 위험 신호다. 가족에게 미안해서, 빚을 갚아야 해서 다시 판에 앉는다고 한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로 더 큰 무책임을 정당화하는 역설이다. 모든 도박이 중독은 아니지만, 멈추려 해도 멈추지 못한다면 손실의 크기보다 심각한 문제다.
가족에게 남는 부담도 크다. 그룹 S.E.S. 출신 슈의 남편 임효성은 지난해 8월, 과거 아내의 도박빚을 해결하려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건넸다고 밝혔다. 새로운 도박 사건이 아니라 과거 사건이 가족에게 남긴 부담을 돌아본 고백이었다. 도박을 한 사람은 한 명인데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닌 것이다.
법적으로도 ‘재미로 했다’는 말이 면책사유는 아니다. 형법 제246조는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를 제외하고 도박을 처벌한다. 형법 제3조는 국민의 국외범에도 적용되므로, 해외의 합법 카지노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의 도박이 당연히 적법해지지는 않는다. 돈이 많다는 사실도,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도 도박의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법이 망신과 퇴출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자숙은 활동을 멈추는 일이고, 회복은 도박을 반복하게 만든 행동과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도박장애에는 전문적인 치료와 도박 접근을 제한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사과문이 치료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소속사와 방송 운영진도 해명문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사자가 도움을 요청할 통로를 마련하고, 출연자에게 지급할 정산금과 개인 자금이 뒤섞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가족도 끝없이 빚을 대신 갚는 역할에 갇혀서는 안 된다. 중독을 질환으로 이해하자는 것은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재발을 막자는 것이다. 책임은 회복을 대신할 수 없고, 회복은 책임을 지워주지 않는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