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자마자 추천 플레이리스트가 화면을 채운다. 몇 곡을 잇따라 스킵하다 한 소절의 멜로디에 손끝이 멈춰 서고 노래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단 몇 초 만에 갈리는 스킵과 완곡의 선택은 즉시 정밀한 행동 데이터로 변환돼 플랫폼 알고리즘의 다음 추천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스크린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듣는 이 음악은 과연 나만의 자발적 ‘취향’일까, 아니면 알고리즘이 제시한 경로에 순응한 ‘행동의 결과’일까.
과거 청취자가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정문(正門)은 라디오 DJ의 라인업, 음반매장 MD의 매대 디스플레이, 그리고 음악 전문지 평론가의 비평이었다. 오늘날 이 관문은 개인화된 홈 화면과 알고리즘 기반의 추천 플레이리스트로 완벽히 교체되었다. 끝까지 귀를 붙들었던 한 곡은 며칠 뒤 다른 추천 목록의 익숙한 인트로로 되돌아온다. 이 반복적 만남 속에서 낯섦이 호감으로 변모할 때, 청취자는 이것이 자신의 능동적 취향인지 거듭된 노출이 만든 착시인지 경계를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관측하는 본질은 청취자의 내면적 ‘취향’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 데이터의 흔적’이다. 완곡 여부, 스킵 시점, 반복 청취, 저장, 아티스트 팔로우, 개인 플레이리스트 편입 등 수많은 신호가 실시간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 플랫폼은 이 기록을 기반으로 다음 재생 가능성을 추정하고 추천 순위를 산출한다. 플랫폼이 ‘취향을 맞춘다’고 말할 때, 그것은 과거의 행동 기록으로 미래의 선택을 예측한다는 통계적 확률을 의미한다.
스포티파이의 ‘디스커버 위클리’는 매주 월요일 청취 이력을 분석해 새롭거나 낯선 30곡을 제안하는 ‘발견형’ 서비스다. 반면 매주 금요일의 ‘릴리스 레이더’는 구독자가 팔로우하거나 자주 들었던 아티스트의 신곡을 집중 안내한다. 목록이 끝난 뒤 유사한 결의 곡을 이어주는 ‘자동재생’까지 포함하면, 동일한 청취 데이터라 할지라도 서비스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추천 결과값으로 도출된다.
이처럼 추천 시스템이 세분화된 근본적 배경에는 인간의 탐색 능력을 초월한 카탈로그의 과부하가 자리 잡고 있다. 스포티파이 공동 CEO 구스타브 쇠데르스트룀은 2026년 4월 기준 플랫폼 내 카탈로그가 약 2억5000만 곡에 달한다고 밝혔다. 평생을 쉬지 않고 감상해도 극히 일부만 접할 수 있는 규모다. 따라서 최근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진짜 병목은 음원 수급이 아니라, 청취자의 한정된 시간과 주의력을 플랫폼 화면 상단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있다.
이제 플랫폼은 단순한 음원 전달망을 넘어 개인별 큐레이션을 수행하는 강력한 미디어로 지위를 확립했다. 유통이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상태로 올리는 기술적 행위라면, 추천은 메인 화면 첫 줄과 재생 대기열 앞자리에 놓일 곡을 고르는 선택의 권력이다. 과거 라디오 PD, 음반매장 MD, 음악 전문지 편집자, 레이블 A&R 및 마케터가 분점하던 선별과 노출 권한을 알고리즘이 독점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음원에 대한 접근성이 평등해졌다고 해서, 시장에서 발굴될 발견 조건까지 같아진 것은 아니다.
음악 레이블과 아티스트에게 알고리즘 추천 편입은 단순한 노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발매 초기 청취량을 확보하고 완곡률, 스킵률, 저장률, 재청취율을 확인하는 실시간 시장 테스트다. 레이블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후속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 예산 투입 강도를 정밀하게 조율한다. 반응 데이터가 양호할 경우 후속 알고리즘 노출 가능성이 더욱 확대된다. 알고리즘은 음악의 예술적 완성도를 직접 평가하지 않지만, 시장의 시험대에 오를 기회를 차등 배분한다.
결국 추천 시스템은 시장 반응을 관찰하는 모니터링 장치인 동시에, 그 반응 자체를 유도하고 형상화하는 탐색 경로다. 이전의 청취가 다음 추천 순위를 만들고, 새로운 반응이 다시 노출 순위를 조정한다. 플랫폼은 청취 행동을 관찰함과 동시에 어떤 음악을 대중 앞에 세울지 결정한다. 우리가 ‘좋아서 듣는 음악’과 ‘자주 들려와서 익숙해진 음악’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반복적인 노출이 언제나 호감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의 연구진이 국제 학술대회 UMAP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곡의 재청취 가능성은 약 10번째 재생 시점에서 정점을 찍은 후 급격히 하강하는 패턴을 보였다. 초기 반복은 단순 노출 효과처럼 친숙성을 제고하지만, 일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청취 피로도와 스킵 확률을 극대화한다. 즉 횟수와 간격에 따라 친숙함이 쌓이는 구간과 과잉 노출에 따른 반발 구간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더욱이 행동 데이터에는 청취의 ‘맥락’이 거세돼 있다. 수면을 위해 켜둔 플레이리스트나 운동 중 배경음으로 소비된 음악도 플랫폼 시스템상에는 고도의 취향 데이터로 기록된다. 한 곡이 끝까지 재생되었다고 해서 이용자가 해당 곡에 깊이 몰입했거나 자발적으로 재소비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추천 시스템 연구에서는 이를 행동에서 간접 유추한 ‘암묵적 피드백’이라 부른다. 플랫폼이 확보한 데이터는 취향의 깊이가 아니라 단순한 행동의 흔적에 불과하다.
또한 알고리즘이 소비를 무조건 획일화한다는 통념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2020년 스포티파이 연구진의 자사 이용자 분석에 따르면, 대다수 청취자는 알고리즘 추천을 통할 때보다 직접 검색해 선곡할 때 훨씬 다채로운 음악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것이 추천 알고리즘 자체의 다양성 저해 때문인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 관성적 이용자들이 추천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인지는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추천 알고리즘의 최종 큐레이션 배열은 단순한 예측 정확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플랫폼은 관련성, 친숙성, 새로움, 다양성, 서비스 이용 시간 중 무엇을 최우선 가치로 둘지 정책적으로 결정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최적화를 넘어 엔지니어링 및 서비스 디자인 차원의 거대한 상품 설계다. 동일한 행동 데이터라도 플랫폼이 지향하는 청취 경험의 목표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목록으로 탈바꿈한다.
이에 따라 최근 스트리밍 사업은 이용자에게 추천의 주도권을 일정 부분 환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특정 곡이나 플레이리스트가 추천 학습 알고리즘에 반영되지 않도록 제외하는 기능을 도입했으며, 2026년 3월부터는 이용자가 자신의 ‘취향 프로필’을 직접 확인하고 추천 메커니즘을 수정하는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디저 역시 같은 해 ‘플로 튜너’를 선보이며 장르 및 하위 장르의 반영 비율을 직접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오염되거나 잘못 해석된 데이터 신호를 청취자가 직접 정정할 수 있을 때 개인화의 정교함도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디지털 음원 시대 청취자의 역할은 알고리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나 수동적인 수용에 있지 않다. 수면이나 운동 등 특정 목적을 위한 단순 배경음 청취는 추천 학습에서 제외하도록 설정하고, 익숙한 알고리즘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새로운 음악은 직접 검색하여 저장·큐레이션하는 능동성이 요구된다. 라디오, 소셜 미디어, 라이브 공연 현장에서 발굴한 음악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청취 생태계로 이식해야 한다.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순간, 청취 권력은 플랫폼이 설계한 경로에 완전히 귀속된다.
결국 취향의 자율성은 알고리즘이 부재한 상태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제시한 경로를 스스로 수정하고 재설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확보된다.
오늘 당신이 재생한 그 음악은 정말 당신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플랫폼이 예견한 통계적 확률이었을까. 손끝이 다시 화면 위에 머무르는 바로 그 순간, 취향의 주권은 알고리즘과 청취자 사이에서 다시 시험받고 있다.
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박태용의 뮤직인사이트]③ AI는 아티스트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