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여정이 ‘지금 불륜이 아닙니다’에서 이웃집 경희네 부부가 친절을 베풀자, 선을 그으며 뱉은 말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조여정의 ‘과한 연기’는 부담이 아니다. 그냥 땡큐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이하 ‘지금 불륜’)는 불륜으로 얽힌 두 이웃집 부부가 걷잡을 수 없는 사건과 비밀에 휘말리는 연쇄 추돌 블랙 코미디다.
극중 조여정이 연기하는 안수정은 우아하고 교양 있는 피부과 원장이다.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지만, 남편과 이혼 소송을 벌이며 딸의 양육권을 지키려 애쓰는 불안하고 예민한 인물로, 사건이 거듭될수록 감춰왔던 불완전한 면모를 드러낸다.
처음 안수정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영화 ‘기생충’(2019)의 연교(조여정)가 떠오른다. 좋은 집에 살고, 우아한 옷차림과 나긋한 말투를 지닌 ‘사모님’. 배우까지 같으니 언뜻 비슷한 캐릭터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닮은 외피 안에 전혀 다른 속내를 품고 있다.
‘기생충’의 연교는 순진했다.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의 이면을 좀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이미 집 안 깊숙이 들어와 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유능해 보이고 싶어 과외 선생님 앞에서 영어를 섞어 쓰는 모습조차 연교의 허영과 순진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치였다. 사진=쿠팡플레이 제공 반면 ‘지금 불륜’의 안수정은 순진함과 거리가 멀다. 앞집 경희 부부의 친절에 “앞으론 이렇게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선을 긋는 모습이 단적인 예다. ‘기생충’에서 타인을 너무 쉽게 믿었던 사모님이 이번에는 타인을 좀처럼 믿지 않는 사모님이 된 셈이다.
의사 가운에 라텍스 장갑을 낀 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경희의 남편 재홍(김지훈)과 병원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등 순진하다 못해 아주 과감하다.
두 캐릭터의 가장 큰 차이는 사건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연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이 벌인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었다면, 안수정은 이혼과 살인, 불륜 등 작품을 뒤흔드는 사건의 한가운데에 직접 서 있다.
흥미로운 건 두 ‘사모님’을 연기하는 조여정의 온도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기생충’의 연교가 나긋한 말투와 엉뚱한 반응으로 순진함을 극대화했다면, 안수정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감정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특히 안수정은 조여정의 ‘과한’ 연기가 제대로 맛을 내는 캐릭터다. 불안과 예민함, 딸을 향한 애착과 욕망이 뒤섞이면서 감정의 진폭도 점차 커진다. 조여정이 제작발표회에서 안수정을 두고 “시작과 끝이 아주 다른 인물”이라고 말한 이유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지는 대목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김혜수와 조여정의 투톱 작품인 데다 김혜수가 맡은 경희는 의상부터 말투, 행동까지 톡톡 튀어 한쪽으로 시선이 쏠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막상 작품을 열어보니 조여정은 역시 조여정이더라. 외적으로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미세한 표정과 말투로 불안과 욕망을 쌓아 올렸다”고 평가했다.
사진=쿠팡플레이 제공 그래서 ‘지금 불륜’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기생충’의 사모님은 희미해진다. 같은 배우가 다시 우아한 사모님을 연기한다는 익숙함으로 시작했지만, 조여정은 안수정을 연교의 반복으로 만들지 않았다. ‘기생충’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모님이었다면, ‘지금 불륜’에서는 감추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사모님이다.
‘기생충’ 개봉 이후 7년. 조여정은 또 한 번 ‘사모님’이 됐지만, 그때의 사모님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그러니 안수정의 말처럼 과한 정성은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조여정의 과한 연기는 다르다. 이 정도 과함이라면, 얼마든지 땡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