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해준 (사진=하이지음스튜디오 제공) “그 현장은 정말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리숙한 신입 막내가 사고를 칠 수도 있다지만, 드라마 ‘허수아비’ 속 막내 형사가 부패한 선임의 길을 기어코 따라갈 때 시청자의 배신감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시에 안타까움을 안긴 건 배우 류해준이 당대 무력했던 청년으로서 서사를 설득해낸 것이다.
최근 일간스포츠와 만난 류해준은 “충격과 반전을 주는 역할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갈 줄은 몰랐다”며 “시신 은닉 장면 현장에선 책임감과 무게감을 느꼈다. 대본으로 마주했을 때도 ‘헉’하면서 바들바들 떨면서 읽었다”고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는 1988년부터 2019년까지 30년의 세월을 오가며 악연으로 얽힌 두 남자가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실화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나, 가혹 행위 불법 수사 등 당대 단면을 고발하는 메시지와 배우들의 매끄러운 열연이 호평을 받아 시청률 8.1%(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로 ENA 월화드라마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류해준은 극중 강성경찰서의 막내 형사 박대호 역으로 활약했다. 입사 당시엔 선배 형사 강태주(박해수)를 존경하고 따르지만, 연쇄살인 수사 과정에서 검사 차시영(이희준) 등의 부당한 지시를 받고 결국 끔찍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형사지만 모든 게 처음이라 어리숙한 초반부와 점점 잘못된 길로 휘말리는 중후반부를 차이를 두는 것이 류해준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그는 “처음엔 환경과 선배님들 사이 스미듯 표현했고, 대호가 보통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내리는 시점은 1980년대의 경찰이자 그 시절 청년이라는 상황을 고려했다”며 “실제 시대 문화를 참조하기 위해 자료를 많이 접했고, 외적으로도 2kg 가량 차이를 두어 대호의 변화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9회에서 박대호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발각되며 무너진다. 차시영 측 지시로 숨겨둔 연쇄살인사건 피해 아동의 시신을 개인적 죄책감으로 수색작업 전날 꺼내뒀으나 감쪽같이 사라진 것. 이를 태주에게 들키면서 “시킨다고 다 해? 네가 허수아비야?”란 일갈을 들었다.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류해준 (사진=KT 스튜디오 지니)
이 장면은 류해준의 연기 인생에도 인상적인 방점을 찍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을 절제하느라 힘들었어요. 아역 이아린 배우가 와서 인사를 하는데 쳐다보질 못할 정도였죠. 각자의 입장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임했지만, 태주 선배에게 들키는 신에선 혼이 나갈 것 같았죠.”
태주가 대호의 뺨을 때린 것도 당시 배역과 감정이 동화된 류해준의 반응을 보고 박해수가 자연스럽게 꺼낸 연기였다. 촬영 전 함께 해석을 주고받으며 호흡을 두텁게 맞췄다며 류해준은 “연기하면서 박해수 선배와 강태주 형사가 동시에 보였다. 제 개인적으로도, 배우로서도 감정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특히 류해준은 박해수로부터 “나와 같은 결 같다. 같은 냄새가 난다. 내 어릴 적과 닮았다”는 칭찬을 들었다는 일화도 꺼냈다. 그는 “아마 선배님처럼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제가 작품에 쏟아붓는 시간이나 태도에서 느끼신 게 아닐까”라며 “선배님은 현장에서 책임감과 품격을 보여주셨는데 유머도 갖추셨다. 그런 점을 저도 배우고 싶었고, 추구해야 할 기준점을 만난 느낌”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배우 류해준 (사진=하이지음스튜디오 제공) 이번 작품에선 박해수를 만났듯, 류해준은 앞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이병헌 아역을 연기했으며, 지난해 종영한 ‘신사장 프로젝트’에선 한석규, ‘하이퍼나이프’에선 박은빈 등 굵직한 경력의 선배 배우와 함께하는 필모그래피를 착실히 쌓아왔다. ‘허수아비’를 통해서는 선과 악을 타지 않고 한 인물로 녹아드는 장점을 다시금 보여줬다.
돌아보니 신인 후배들이 부러워할 작품을 운 좋게 만나왔다고 웃은 류해준은 “‘허수아비’를 통해 선배님들과 긴 호흡을 주고받게 되어서 ‘이런 현장을 만나기 위해 내가 기다려 왔구나’란 생각도 들었다”며 “내 자신에게 의구심도 있던 시점이었는데 이번 현장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그걸 부수고, 좋은 건 취하고 나쁜 건 버리면서 ‘기준’을 잡게 됐다. 배우로서 깊고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준 작품”이라며 애정을 표했다.
얻고 싶은 수식어를 묻자, 잠시 곱씹어 본 류해준은 ‘계속 궁금한 배우’를 꺼냈다.
“저는 스타일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타입이라 어릴 적엔 캐릭터성이 없나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배우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하는 직업이니, 제가 계속 진심을 갖고 사람을 공부하고, 현장을 대하다 보면 색깔도 짙어질 것 같아요. ‘류해준에게 이런 얼굴은 어떨까?’ 궁금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