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로맨스 훼방꾼이라기엔 너무 가혹한 ‘시련’이다. 배우 장승조가 장르를 뒤흔드는 격이 다른 빌런을 ‘멋진 신세계’로 보여주고 있다.
장승조가 출연하는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는 희대의 조선 악녀가 300년 후 현대의 무명 배우 신서리(임지연)로 눈뜬 뒤 악질 재벌 차세계(허남준)를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린 로맨스 코미디물이다.
타임슬립 같은 판타지 설정을 세웠지만, 조선 배경 사극 고증을 살린 만듦새와 배우들의 호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자체 최고 시청률 10.4%(닐슨코리아 전국)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장승조는 극중 차일건설 사장 최문도이자 조선시대 가상의 왕 안종 역을 연기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신서리에 몸에 깃든 희빈 강단심의 기억 속 주군과 똑 닮은 얼굴로 등장한 최문도는 차세계의 오촌 형이다. 선량한 사람인 척하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잔혹한 계략을 꾸미고 실행하는 인물이다.
과거 동생인 대군 이현을 제치기 위해 궁녀 강단심의 연정을 이용했던 안종은 현대의 신서리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한다. 신서리와 차세계가 달달한 로코 기류를 한껏 끌어올렸을 때 설렘을 처박듯 등장하는 최문도를 장승조는 연적이나 불청객 그 이상, 넘어서야 할 장벽처럼 그리고 있다.
8회에서 최문도가 조급함에 신서리 앞 본색을 드러내고, 300년 전 안종이 이현을 모함하는 장면이 교차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옥에 갇힌 강단심에게 안종은 “꽃다운 나이에 아우의 목이 꺾이는 건 나로서도 애달픈 일이야”라며 협박하는데, 뱀처럼 속삭이는 장승조의 사극 톤은 전율을 안겼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은 “연기인 거 알지만 열 받아서 욕 나왔다”, “장승조의 악역은 급이 다르다”, “정말 ‘더럽게’ 잘한다” 등 감탄하는 반응을 이어갔다.
워낙 빌런 연기로 정평 난 장승조지만, ‘멋진 신세계’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했단 평가다.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를 통해 1인 2역으로 각기 다른 방향의 악인을 표현해 ‘글로벌 빌런’으로 거듭난 그는 한 사람의 전생과 현생을 아울러야 하는 이번 배역에서도 또 다른 결을 포착했다.
최문도와 안종, 두 인물 모두 먹잇감을 갖고 노는 듯한 미소가 도드라졌다. 입매는 장난기를 머금었지만 형형하게 빛나는 장승조의 눈빛은 보는 이 또한 숨죽이게 한다. 이와 관련 장승조는 “감독님과 상의해 행동, 표현 방식, 웃음조차 소리 내지 않는 ‘절제미’ 있는 인물로 그렸다”고 포인트를 짚었다.
한태섭 감독 또한 장승조와 악인이 보통 사람과 같고 다른 점과 관련한 대화를 깊이 나눴다면서 “장승조가 이야기를 땅에 발 붙게 하는 입체적인 인물인 최문도를 수려하게 구현해냈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극에 서늘함을 더하고 있는 최문도가 장승조의 연기를 통해 측은하게 느껴질 장면도 마련돼 있다고 귀띔했다.
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