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이름조차 낯선 신인 아티스트의 곡이 어느 날 A&R의 화면에 들어온다. 특정 도시에서 먼저 나타난 청취 증가세가 며칠 사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소셜미디어에서 형성된 관심이 스트리밍 증가와 반복 청취, 이전 발매곡의 소비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공연과 오디션, 제작자와 아티스트 매니저의 추천을 통해 포착하던 초기 반응을 이제는 플랫폼 데이터에서 훨씬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지금 특정 곡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일까, 아니면 이 아티스트가 앞으로도 경쟁력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징후일까. 데이터는 한 곡의 흥행을 넘어 아티스트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A&R은 ‘Artists and Repertoire’의 약자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음악을 발굴하고 계약 여부를 결정하며, 레퍼토리와 음악적 방향을 함께 설계한다. 음악 레이블에서 한정된 제작비와 마케팅 자원을 누구에게 투입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도 맡는다. 특히 신인 발굴 단계에서 A&R이 살펴야 하는 것은 이미 확인된 성과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과거 A&R의 어려움이 유망한 아티스트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는 데 있었다면, 지금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어떤 반응이 일시적이고 어떤 흐름이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지를 가려내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스트리밍과 소셜미디어, 플레이리스트, 검색량, 지역별 청취와 팬 행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쌓이면서 A&R의 환경은 ‘정보의 부족’에서 ‘신호의 과잉’으로 이동했다.
AI와 데이터 분석은 이 탐색 단계에서 특히 유용하다. 청취량 급증, 지역별 청취 확산, 반복 청취 증가처럼 사람이 놓치기 쉬운 초기 움직임을 찾아내고 검토할 아티스트의 범위를 빠르게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워너뮤직그룹이 2018년 스트리밍과 소셜미디어, 공연 데이터를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미계약 아티스트를 찾는 소다톤(Sodatone)을 인수한 것도 이런 변화의 한 사례다.
하지만 중요한 판단은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같은 수치도 어떤 경로에서 형성됐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월간 청취자가 100만 명에 이르렀더라도, 그 수치가 대형 플레이리스트 노출로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인지, 이용자가 직접 찾아 듣고 반복 청취하면서 다른 발매곡까지 소비한 결과인지에 따라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스포티파이가 2025년 ‘팬 스터디’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충성도가 높은 ‘슈퍼 리스너’는 한 아티스트의 월간 청취자 가운데 평균 2% 수준이지만 월간 스트리밍의 18% 이상을 차지한다. 특정 플랫폼의 집계지만, 청취 규모가 곧 팬 관계의 깊이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A&R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재생됐는지만이 아니다. 그 관심이 반복 청취와 팔로우, 다른 곡의 소비로 확장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데이터의 예측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2021년 학술지 ‘Decision Support Systems’에 실린 연구는 미국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한 6209곡을 분석해 음향적 특성을 활용하면 상위권 진입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연구 대상은 이미 시장 반응이 확인된 곡들이었다. 이미 반응을 얻은 곡의 성과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를 예측하는 것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미래를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 곡의 성과와 아티스트의 성장을 구분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공개된 곡은 이후 나타난 시장 반응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확인하려면 다음 곡과 이후의 활동까지 내다봐야 한다. 다음 곡에서도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계속 구축할 수 있는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음악적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가. 협업과 공연, 콘텐츠를 통해 일시적인 관심을 지속적인 팬 관계로 바꿀 수 있는가. 이것은 성공 확률을 계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개발 가능성을 읽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A&R의 직관과 데이터를 서로 대립시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숙련된 A&R의 직관은 막연한 감이 아니라 반복된 청취와 미팅, 제작과 발매, 성공과 실패를 거치며 축적된 패턴 인식에 가깝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는 방식, 피드백을 받은 뒤 이를 다음 결과물에 반영하는 과정, 무대에서 드러나는 표현력은 아직 정형화된 데이터만으로 충분히 평가하기 어렵다.
판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음악 레이블은 시장 반응을 지켜보는 조직에 머물지 않는다. 계약 이후에는 레퍼토리를 선택하고, 프로듀서와 창작진을 연결하며, 제작비와 마케팅 자원을 배분한다. 발매 시기와 시장 진입 전략도 함께 설계한다. 이런 선택에는 실제 투자도 뒤따른다. IFPI에 따르면 전 세계 음악 레이블은 2024년 A&R과 마케팅에 81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 수치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투자 규모가 아니다. 음악 레이블은 아티스트의 미래를 예측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선택 이후의 제작과 개발을 통해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개입하는 주체다.
따라서 AI시대의 A&R에서 직관이 데이터로 대체된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달라진 것은 판단의 필요성이 아니라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속도, 그리고 그 정보를 읽는 방식이다. 데이터는 지금 시장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지 빠르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반응이 일시적인 관심인지, 한 아티스트의 다음 단계로 이어질 흐름인지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다.
다시 처음의 화면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프에는 청취와 관심의 변화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아티스트가 다음에 어떤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누구와 작업해야 하는지, 음악 레이블이 어느 정도의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A&R의 해석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수많은 지표 가운데 무엇을 의미 있는 신호로 볼 것인지 판단하고, 이를 실제 투자와 개발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AI가 아티스트 발굴의 속도를 높였다면, A&R에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포착된 가능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음악과 제작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지가 결국 A&R의 판단을 가른다.
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